공부일기

한글창제에 대하여

꿈연이 2022. 4. 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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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란 1446년 세종 때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 된 우리나라의 고유 문자이다.

한글에는 세종의 한 평생 꿈이 담긴 문자이기도 하며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를 꿈꾸게 해줄 수 있는 과학의 문자이기 전에 자연의 문자이다. 또한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이 어울리고 돌고 도는 삼조화의 문자가 가능했으며 그 결과 소리와 문자 뜻이 맞물려 무궁무진한 쓰임새를 자랑하는 생성과 조화의 문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글이 창제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서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이러한 내용은 아주 간결하지만 세종의 동기와 목적이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당시 조선은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자는 조사나 어미가 거의 발달이 안 되어 있고 하나의 낱말을 소리 높낮이로 구분하긴 너무 어려웠다.

그러므로 하자로는 도저히 백성들의 뜻을 전달 받을 수도 전달을 할 수도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한 나라의 있어서 문자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자가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에 전달이 되지 않아 소통이 되지 않으면 서로 오해가 쌓일 것이며 오해가 쌓여 결국 불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당시 조선에 소중화주의를 표방하였더라도 백성들과의 소통은 한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 문헌을 종합해 보면 한글을 창제한 동기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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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온 백성들이 문자 생활을 쉽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우리말을 완전하게 표기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조선의 한자음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표준 한자음을 제정하는 것이다. 세종은 양반 사대부와 같은 특수 계층뿐만 아니라 조선의 모든 백성들도 글말로써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백성들이 쉽게 익혀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창제함으로써 일반 백성들까지 문자를 통한 정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선 사회를 통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특히 세종은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송사가 벌어지거나 옥사가 생겼을 때, 백성들이 글자를 몰라 불이익을 당하는 일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세종이 문자를 개발할 때 가장 중점을 둔것은 백성이 쉽게 익혀서 널리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 세종은 국어의 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의 음소 단위로 분석하여 초성의 음소를 표기하는 17글자와 중성의 음소를 표기하는 11글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종성 글자는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 글자를 다시 쓰게 하였다.

훈민정음은 28개의 음소 단위의 낱글자를 초성 중성 종성으로 조합하여 수천 가지의 음절을 글자로 표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소 글자를 개발함으로써 낱글자의 수를 최소화 하여 글자를 배우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였고, 기존의 한문과 차자 표기법으로는 표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사와 활용 어미와 같은 형태소를 쉽게 표기할 수 있었다.

결국 음소 글자를 창제함으로써 첨가어인 국어의 입말을 손쉽게 그리고 완전하게 적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훈민정음의 글자만으로 국어의 입말을 표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훈민정음 글자는 기존의 한자와 함께 사용해야 했다. 문제는 서로의 글꼴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이러한 글꼴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성음법의 규정을 만들었다.

 

성음법 규정이란 훈민정음 글자는 음소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문장으로 적을 때 반드시 음절 단위로 모아서 적게 하였다. 특히 한자의 음을 표기할 때에는 어떠한 음절이라도 초성 중성 종성을 모두 갖추어 적게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음을 표기할 때 쓰인 훈민정음의 음절 단위 글자는 대체로 정방향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한자 글꼴과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였는데 훈민정음의 글자를 음절 단위로 모아서 쓰게 되자, 초성 글자에 중성 글자를 붙여 적는 방법이 문제가 되었다. 곧 초성은 단독으로 발음되지 않음으로 반드시 중성을 붙여 써야 한다. 그런데 중성 중에서 어떤 것은 초성의 아래에 붙여 써야하고 ,

또 어떤 것은 초성의 오른쪽에 붙여 써야 한다는 규정을 두었는데 이러한 규정을 부서법이라고 하였다.

부서법으로 인해 실제로 사용되는 글자의 모양을 조금 더 조화롭게 할 수 있었다.

세종은 훈민정음으로써 국어를 표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표음 글자인 훈민정음 글자를 활용하여 표의 문자인 한자의 음을 표기하려고 하였다. 곧 훈민정음 글자를 이용하여 조선의 표준 한자음을 제정하여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나아가 중국 한자음까지 훈민정음으로써 표기하려는 노력을 펼쳤다. 그래서 세종은 조선의 표준 한자음 체계를 정립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동국정운>의 편찬으로 완성 되었다.

 

<동국정운>은 중국에서 한 음절을 성모와 운모로 이분하여 본 것과 다르게 초성중 중성 종성의 삼분 체계를 세웠다는 데 훈민정음의 뛰어남이 있다.

중국식 이분법에 따르는 표음 방식은 반절법이다. 그러나 한글은 제작할 때에는 운모를 다시 중성과 종성으로 분석해 우리말에 가장 적합한 삼분법을 창안한 것이다.

이는 자음을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으로 분리하고 연계성을 발견하여, 그 이치를 문자로 구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삼조화의 이치를 언어 차원에서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이 <동국정운>은 현실 발음보다 이상적인 발음을 더 많이 다룬 책이였다.

그래서 동국정운식 표기법은 그리 오래 쓰이지 못하고 성종 때가 되면 불경을 언해한 일부 문헌에만 쓰이게 되었다.

세종은 한글을 만든 후에도 문자를 보급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쳐 나갔다.

한편으로는 한글의 사용법을 설명하고 글자 창제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기 위하여 한글에 대한 종합 해설서로써 <훈민정음 해례본>을 간행하였고, 백성들이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한글을 이용해 국어의 입말을 실제로 문장의 단위로 적어서 그 실용성을 시헌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첫 번째 노력으로 <용비어천가>의 노랫말을 한글로 지어서 간행했는데 이로인해 한글로써 국어의 입말을 실제로 적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세종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월인천강지곡>을 직접 지어서 간행하였다.

또한 반포 한 달 뒤에 전문 관청인 언문청을 설치 하였으며 일부 하급관리 시험에 한글을 반영하였고 1447년 전면화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로써 세종은 왕으로 할 수 있는 정책을 거의 모두 시행하여 한글을 보급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러한 세종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고유문자를 가질 수 있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글은 세종과 수 많은 학자들이 백성과 나라를 위해 만들어진 문자이며, 세계유일 계획적,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문자이다.

또한 세계유일하게 문자에 대한 해설집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는 문자이다.

그리고 한글이란 글자 안에는 우주의 기본 원리인 하늘, 땅 , 사람이 있고 기본자음은 사람의 발성기관을 본떠 만든 것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소리와 언어를 글로 표현 할수 있는 유일한 글자이다.

한자도 많은 말을 표현할 수 있지만 자연의 소리까지는 표현할 수 없다.

한글은 불과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을 조합하여 이중자음 쌍자음 이중모음 등으로 확장하면 이 세상 어떤 소리도 표현이 가능하다. 이렇게 표현이 풍부한 글자라고 해서 배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

한글의 최대의 장점은 단 하루 만에 배우고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도 표음문자이기도 하지만 발음과 문자의 표기가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쉽게 배우고 쓰기에는 쉽지 낳다. 그어나 한글은 문자와 발음이 사실상 모두 일치하여 쉽고 빠르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한글이 창제가 되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 어느 나라 말을 한국어로 사용하고 있었을까? 아마 조선시대에는 한자를 계속 쓰고 읽고 일제 강점기시대에는 일본어를 한국어로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민족에게 언어가 없는 것이란 주체성이 없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에도 일본은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를 사용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에 민족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지배해야 완전한 식민지가 되어 원하는 대로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글을 소중히 여기고 바르게 사용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참고 문헌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 김슬옹 지식산업사

훈민정음의 이해 나찬연 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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